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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아이와 속초 시립박물관과 발해역사관 속초실향민 문화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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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저희는 속초로 가족여행을 떠났습니다. 남편 회사의 휴양지도 당첨이 되어 아주 편하게 힐링하다 왔습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우리 아이는 박물관 관람을 매우 좋아하는데요 속초에도 박물관들이 꽤 있었습니다. 
 
첫번째로 속초 시립박물관과 발해 역사관을 다녀왔습니다. 
바로 개가 붙어 있어서 더운 여름 실내에서 시간 보내기 좋았습니다. 
 
 
속초 시립 박물관

주 소 : 강원도 속초시 신흥2길 16
관람시간 : 3~10월, 09:00~18:00 / 11~2월 09:00~17:00
휴관정보 : 매주 월요일, 1월 1일
관람요금 : 성인 2,000원 / 청소년 1,500원 / 어린이 700원
기타정보 : 박물관, 실향민문화촌, 발해역사관 통합매표
주차정보 : 전용 무료주차장 있음
전화번호 : 033)639-2977

 

 

 
날이 매우 더워서인지 소나기가 내릴거 같아 일단 도착하자 마자 야외의 속초 실향민 문화촌을 먼저 둘러보았습니다. 
실향민 문화촌은 6.25 전쟁때 북쪽에서 내려와 이곳에 터를 잡고 지내신 실향민들의 생활을 그대로 구현해 놓았는데요
예전 외할머니집이 이렇게 비슷해서 저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더라구요
 
실감나고 상세하게 되어 있어서 구경하면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야외에는 어린시절 가지고 놀수 있는 제기차기나 포항던지기 등을 직접 해볼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어요
 
영상실에는 실향민들의 아픔을 영상으로 인터뷰식으로 틀어줘서 그들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었네요

 

놀라웠던게 옛날 상점이 그대로 있었는데 이 안에서 직접 아이스크림이나 커피 등을 사먹을 수 있었어요
옛 장남감들도 팔고 계시더라구요 더위를 피할겸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먹었습니다. 
 
비가 조금씩 내려서 언릉 실내로 들어갔습니다. 

 

 

속초시 동명동 450-195번지에 있었던 프랑스식 고깔형 건축 구조의 속초역사(驛舍). 1978년 철거되기까지 37년간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운명을 함께 했다.
속초역사는 1941년 동해북부선(원산∼양양)이 지나는 역사의 하나로 세워졌는데 동해북부선은 일제가 양양의 철광석을 군사기지였던 원산으로 수송하려는 제국주의적 수탈의 목적에서 건설한 철도였다. 당시 북으로 가는 기차는 양양역을 출발하여 낙산ㆍ물치ㆍ속초ㆍ천진ㆍ문암ㆍ공현진ㆍ간성ㆍ현내역을 지나 통일전망대 바로 아래에 있던 초구역, 그리고 지금의 북한 땅인 고성ㆍ삼일포ㆍ외금강ㆍ장전ㆍ통천역을 지나 종착역인 원산역까지 연결되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 속초역사는 38선 이북지역에 속해 북한의 통제 하에 있었으며,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대규모 폭격으로 철로가 파괴되어 역사의 기능이 중단되었으며, 국군이 북진할 때는 화장장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1951년 8월부터 1954년 11월까지 속초 지역에는 미군정이 실시되었는데 당시 속초역사는 미군항만사령부의 취사장과 댄스홀로 사용되었다. 그 후 1956년 4월에 명신고등공민학교가 들어서 불우학생의 배움터가 되었다가 1957년부터는 벽돌공장인 고려산업사가 입주하였다. 이후 동해북부선 역사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남아 있었던 속초역사는 1978년 4월 10일에 철거되었다.
 
 

- 출처 : 속초 시립 박물관의 내용 중에서 - 

 

 

 


 

속초 시립 박물관은 생각보다 잘되어 있었어요 전시실뿐만아이라 아이들이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체험실도 있고 특별전시로 곤충전시까지 함께 볼 수 있어서 내용이 풍부했습니다. 
 
제 1전시실은 고장의 속초라는 주제로 속초 지역들을 곳곳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속초의 역사와 문화유산 자연환경들을 이해하기 쉬운 다양한 자료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바다의 도시답게 어촌의 삶과 풍경 토속음식등을 설명하여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아이들이 체험을 통해 직접 경험을 해보면서 더 오래 기억이 남을거 같네요

 

속초 실향민의 역사:

  1. 한국전쟁과 실향민 발생:
    •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특히 북한 지역에서 전쟁을 피해 남쪽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한에 정착하게 되었고, 속초는 이들이 모여 사는 주요 지역 중 하나로 발전했습니다.
  2. 속초 실향민의 정착:
    • 속초는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많이 정착하면서 급격히 인구가 늘었습니다. 이들은 속초의 바닷가와 가까운 곳에 집을 짓고 생활하면서, 어업과 상업에 종사하게 되었습니다. 속초의 아바이마을은 특히 함경도 출신 실향민들이 모여 산 지역으로 유명합니다.
    • 실향민들은 고향의 문화와 전통을 속초에 이식하였고, 이로 인해 속초는 독특한 문화적 색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함경도식 음식인 '아바이순대'와 '오징어순대' 등이 속초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도 실향민 문화의 영향입니다.
  3. 실향민 문화의 보존:
    • 속초에는 실향민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속초 실향민 문화촌"과 "실향민 역사관"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실향민의 생활사와 그들이 남긴 문화적 유산을 보존하고 있으며, 다양한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후세에게 그들의 역사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4. 현재 속초 실향민:
    • 현재 속초의 많은 실향민들은 고령화되고 있으며, 그들의 후손들은 실향민 2세, 3세로서 속초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여전히 실향민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속초의 지역 사회와 융합하여 현대적인 속초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속초 실향민들의 역사는 단순한 이주나 피난이 아닌, 그들의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온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며, 속초라는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전시실에는 특별전시로 곤충들의 표본과 실제 곤충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곤충 좋아하는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하나하나 관찰했는데요 실제 살아 움직이는 곤충들도 있어서 더 생동감있게 보았습니다. 


 
 

 
 

 


 

 
이제 바로 옆에 있는 발해역사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입장권하나만 끊으면 같이 구경할 수 있는데요 
 
들어가면 시원한 영상관에서 드라마 대조영을 간추려서 보여주었습니다. 
유튜브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도 몰입감 있게 한참을 보았네요
 
간만에 젊은 최수종아저씨를 보니 진짜 대배우답게 연기를 너무 잘해서 저도 한동안 넋을 잃고 보았습니다. 
 
지하에는 발해 관련 전시실이 있었는데요 유물들과 왕실들의 업적, 공주의 무덤등 작았지만 실속있는 전시였습니다. 


 

대조영(대조영, ? ~ 719년)은 발해(渤海)의 건국자이자 초대 왕(고왕, 高王)입니다. 대조영은 고구려 멸망 후 혼란 속에서 동아시아 북부 지역에 새로운 국가를 세운 인물로, 그의 업적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만주 지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대조영의 생애:

  1. 출신과 배경:
    • 대조영의 출신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습니다. 일부 기록에서는 그가 고구려 유민이라고 전하며, 다른 기록에서는 그를 말갈족 출신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을 이끌고 발해를 건국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 고구려는 668년 당나라와 신라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였고, 많은 고구려 유민들이 피난 생활을 하거나 당나라의 통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2. 발해 건국:
    • 대조영은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을 이끌고 당나라의 억압을 피해 동쪽으로 이동했습니다. 698년경, 길림성 동모산(현재 중국 동북부) 지역에서 당나라의 군대를 물리치고 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하게 됩니다.
    • 이후 대조영은 동모산에서 새로운 국가를 세우고 이를 "진국"(震國)이라 불렀으나, 나중에 "발해"로 국명을 바꾸었습니다. 발해는 이후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3. 발해의 발전:
    • 대조영은 발해의 기틀을 다지며 고구려 유민들의 귀속감을 높이고, 말갈족과의 연대를 강화했습니다. 그는 한반도와 중국 대륙, 일본에 이르는 광범위한 교역망을 구축하였으며, 발해는 문명화된 나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 발해는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릴 만큼 번영하였고, 이 시기에 대조영은 정치, 경제, 군사 등 다방면에서 나라를 안정시키고 성장시켰습니다.
  4. 사망과 유산:
    • 대조영은 719년경에 사망하였고, 그의 아들 대무예가 뒤를 이어 발해의 2대 왕이 되었습니다. 대조영이 세운 발해는 이후 약 200년 동안 동북아시아의 주요 세력으로 자리잡았으며, 발해의 문화와 정치체제는 후대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발해는 후에 거란족의 침입으로 멸망하였지만, 대조영의 업적은 한국과 중국 역사에서 고구려의 부흥을 이룬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대조영은 발해를 통해 고구려의 정신을 계승하고, 혼란한 시대 속에서 새로운 나라를 건국한 위대한 지도자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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