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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아이와 행주산성 축제 행주가 예술이야 근처 삼이국수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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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징검다리 연휴를 맞아 경기도 행주산성에 다녀왔습니다. 때마침 행주산성 축제를 진행하고 있었어요 
아이와 근교로 당일치기 다녀오기 딱 좋았습니다. 날씨도 도와줘서 선선하고 운동도 할겸 편한 복장으로 다녀왔네요
 

위치 

행주산성(幸州山城)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동에 위치한 산성으로, 임진왜란 당시 중요한 전투 중 하나인 행주대첩이 벌어진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 산성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해 있어 군사적 중요성이 컸습니다.
 

 
입장료는 무료이고 주말이라서 주차도 무료였습니다. 단, 주차 전쟁이었어요 ㅠㅠ 
사람들이 내려서 주차 자리 찾고 맡고 있고 정말 장난아니었습니다. 
주차는 각오하시고 오셔야 할거 같아요 ㅠㅠ 

 

행주가 예술이야 라는 축제를 2024.09.27. (금) ~
 2024.10.13. (일) 동안 진행해서 더욱 그런거 같습니다. 
 

역사적 배경

행주산성은 삼국시대에 처음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임진왜란(1592~1598) 동안 큰 역할을 했습니다. 1593년 2월, 권율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이 왜군과 벌인 행주대첩은 조선군의 중요한 승리로 기록되었습니다. 권율 장군은 소수의 병력과 행주산성의 지형을 활용해, 3만 명에 달하는 일본군의 공격을 방어하고 승리했습니다. 이 전투는 조선군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국가적 사기를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구조

행주산성은 산 능선을 따라 축조된 포곡식 산성으로, 성벽은 자연지형을 따라 쌓아져 적의 접근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성의 주된 축성 시기는 고려나 조선시대 초기로 추정되며, 전체 성벽의 길이는 약 1.2km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성벽은 부분적으로 복원된 상태이며, 산성의 전체적인 원형은 일부만 남아있습니다.

주요 유적

행주산성 내부에는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과 관련된 유물들이 있으며, 권율 장군 동상행주대첩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외에도 산성 내에는 행주대첩에서 사용된 무기와 방어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어 당시 전투의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겨우 주차를 하고 입장을 했습니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는데 행주산성 축제가 거의 야경위주로 진행을 합니다. 18시부터 시작이라서 저희는 조금 일찍 도착했네요 
 
행주산성을 관람하시려면 우선 이 대첩문을 들어가야 하는데, 여기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하셔야만 합니다. 입장료는 성인 1,000원, 청소년은 500원이며, 어린이는 300원이고 기타 대상에 따라 다양하게 할인이나 무료입장이 가능하오니 안내 글을 잘 살펴보시고 매표하시면 되겠습니다. 자, 이제 대첩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곳 행주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을 기념하는 장소로 오늘 보시는 대부분의 시설물들은 1970년 국토정화보수작업에 의하여 세워졌습니다. 이 대첩문도 그때 세워졌는데요 정면 3칸, 측면 2칸, 높이는 4.7m이며 평삼문 구조의 콘크리트 건물로 ‘대첩문’이라는 현판을 달았습니다. 당시 행주내동 부락을 끼고 올라가는 길을 폐쇄하고 1,000여 평의 광장을 성토하여 만든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저기 문 위에 홍살문도 있고요 문이 세 개입니다. 삼문 형태로 평소에는 이 문으로만 통행하지만 이 세 문이 모두 열리는 날이 있습니다. 행주대첩제나 행주문화제, 해맞이 등 축제행사 때는 모두 열어둔답니다.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권율 장군의 동상이 보이시죠? 그리고 저기 왼편에 있는 건물은 고양시 문화관광해설사 사무실입니다. 바로 저곳에서 문화관광해설사가 대기하고 있다가 관람객이 해설요청을 하시면 해설을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무료해설입니다. 일단 동상 설명은 잠시 아껴두고 여기 오른쪽으로 난 숲길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아이가 체험할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18시부터 시작이어서 내려오는 길에 해보기로 했습니다. 
정문을 들어서니 권율장군 동상이 있습니다 여기 뒤에 함께 싸운 병사들의 소개가 되어있네요
 
이제 권율 장군 동상 앞으로 갑니다. 저기 보이는 깃발은 군령기라고 하는데 군대에서 명령을 알리는 깃발로 행주산성이 군사지역이었음을 상징하는 깃발들입니다. 6기가 꽂혀 있지요? 순찰을 알리는 순시기(巡視旗), 명령을 전하는 영자기(令字旗) 등 깃발의 기능은 다른데 모두 오방색을 기본으로 하고 있답니다. 맨 앞의 깃발만 순시기이고 나머지는 모두 영자기인데 영자기도 어떤 색이냐에 따라 명령 내용이 달랐답니다. 이곳 행주산성에서는 저런 깃발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뒤에서 동상을 호위하듯이 서 있는 소나무는 반송이라고 합니다. 마치 그 모양이 소반을 엎어놓은 듯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소나무 가지가 많아서 천지송, 만지송이라고도 부르곤 한답니다. 이 반송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저기 서서 한결같이 권율 장군님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제 드디어 권율 장군님 동상 앞입니다. 이 동상은 한국 근대조각가 김세중 선생의 작품입니다. 김세중 조각가는 서울대 조각과 1회 졸업생으로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국립현대미술관장 등의 미술행정의 일선에서도 뛰어난 활동을 하신 근대조각가입니다. 한국조각의 기수라고 불리며 광화문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 유엔참전기념탑, 유관순 동상 등 많은 기념 조각작품을 남겼습니다. 권율 장군 동상은 1986년에 건립되었으며 높이는 5m, 좌대높이 3.35m가 되니 총 높이는 8m가 넘습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권율 장군과 행주대첩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권율 장군은 1537년(중종32년)에 영의정이던 권철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대여섯 살 때 아무도 해독하지 못하던 중국사신이 준 문자를 풀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여 큰 인물이 될 아이라는 기대를 받고 자랐습니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취당(晩翠堂), 시호는 충장(忠壯)이고 사별하여 두 번 결혼하였으나 슬하에 딸 하나만 두었는데 사위는 그 유명한 오성대감 이항복입니다. 성품은 명문가의 아들이었으나 자만하지 않고 사람을 대함에 성심을 다하였으며, 기골이 장대한 팔척장신의 용모로 풍채와 행실이 모두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어릴 때 영특했던 영의정의 아들임에도 마흔 살이 넘을 때까지 과거를 보지 않아 집안의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이때 권율 장군은 당시 양반 자제들처럼 과거시험 공부로 책상에만 앉아 있지 않고 전국을 누비며 조선의 산천과 강을 살피어 관방시설과 지세를 익히는 산 공부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 덕에 임진왜란 때 그의 숨은 지혜는 놀랍게 발휘됩니다.

권율 장군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삼년상을 마친 뒤 늦은 나이 46세 때 과거시험을 처음 봅니다. 물론 합격합니다.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의주목사로 있다가 임진왜란이 난 후 나주목사에서 다시 광주목사가 되어 ‘늑대와 독사 같은 왜적을 소탕하여 나라를 구하자!’는 비장한 격문을 발표하고 1,500명의 의병을 모집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풍전등화와 같았던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맹활약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치대첩과 독산성 전투를 통하여 일본군을 물리친 후 행주산성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한편 왜군은 명나라 장수 이여송 부대와 합세한 조·명연합군에게 평양성에서 대패하였으나 이후 벽제관 전투에서는 이기게 됩니다. 왜군들은 그 기세를 몰아 권율부대가 주둔한 행주산성으로 몰려옵니다. 이미 이치와 독산성에서 패한 경험이 있던 왜군은 권율 장군을 반드시 잡아 패배한 치욕을 씻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처음 권율 장군은 아현동 고개쯤에 진을 치려했으나 부하장수 조방장 조경이 행주산성에 진을 칠 것을 권하고 이를 받아들여 양천구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이곳으로 건너왔습니다. 산성에 들어온 권율부대는 이중으로 목책을 만들고 전투에 만전을 가하였습니다. 마침내 1593년 2월 12일 새벽 6시! 왜군들이 쳐들어왔습니다. 왜군은 당시 3만 명이나 되었으며 말을 타고 조총을 들고 기괴한 가면을 쓰고 깃발을 휘날리며 몰려왔습니다. 기세등등한 위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우리 병력은 얼마나 되었을까요?
그때의 우리 병력은 겨우 2,300명이었습니다. 그것도 모두 정식 군인도 아닌 관군, 의병, 승군, 여성을 모두 합한 숫자입니다. 3만 명 대 2,300명! 누가 봐도 이 전투는 결코 승리할 수 없는 전투였습니다. 3만 명의 왜군은 7진으로 나누어 공격해 왔습니다. 첫 공격은 제1대장 고니시 유키나가를 선봉으로 한 조총부대였습니다. 이때 우리 군사들은 혼신을 다하여 이를 막아냈습니다. 연이어 2차, 3차 공격에도 패하자 보다 못한 총대장 우키다 히데이에가 나섰으나 결국 우키다 히데이에를 포함하여 4명의 대장들이 부상을 당하고 저녁 6시가 되자 왜군은 물러납니다. 왜군의 공격은 1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고 참패로 끝났습니다. 바로 이것이 행주대첩으로 조선군이 12배도 넘는 적을 물리친 기적적인 승리였던 것입니다. 행주대첩의 가장 큰 의미는 이 싸움 이후 왜군의 전세가 완전히 꺾이고 명나라 군사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한성을 되찾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바람 앞에 등불 같았던 상황에서 바람이 자자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럼 당시 그 용감했던 2,300명의 병력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동상 뒤의 이 동판 부조물이 자랑스러운 우리 군사들을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부조 그림 관군은 나라에 소속되어 있던 정규군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현직군인입니다. 관군은 지휘자의 명령에 따라 체계적으로 화살, 궁시, 칼 등의 무기를 사용하였습니다. 관군들은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화살을 쏘았습니다. 그 이유는 물론 화살을 아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 이 그림에서 권율 장군님을 찾아볼까요? 저 위에 계시네요. 장군님의 호령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나요? 저기 신기전의 모습도 보이네요. 그 유명한 신기전에 대한 소개는 대첩기념관에서 하는 걸로 하구요 옆 부조물인 의병들을 보겠습니다. 의병은 나라가 위급할 때 백성들 스스로 자원해서 조직된 군대입니다. 평소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던 사람들로 전투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보세요. 무기로 쓰인 농기구가 보이죠? 도끼, 낫, 삼지창, 죽창 등을 무기로 들고 나와 나라를 구하고자 뭉쳤습니다. 당시 얼마나 나라가 긴급한 상황이었는지를 한 눈에 보여주고 있는 그림입니다. 이번에는 이쪽 승군의 장면을 볼까요? 저기 가운데 염주를 걸고 계신 분이 승장 처영 스님입니다. 당시 승군들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해냅니다. 사명대사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승군부대가 결성되고 전투에 있어서도 맹활약을 합니다. 행주대첩 때에는 특히 위험한 지역을 맡아 가장 치열한 전투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다 할 무기가 부족해 재주머니를 만들어 던지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기 여성부대는 부상병을 치료하고 밥을 해주러 왔다가 전사가 된 경우입니다. 행주대첩에서 어쩌면 가장 유명한 부대인지도 모르겠네요. 행주치마 전설을 만들어낸 부대이니 말입니다. 전투가 위급해지자 성안의 부녀자들이 치마를 잘라 겉치마로 걸치고 돌을 날라주어 수차석포 발사나 성안에서 돌을 굴려 올라오는 왜군을 막는 투석전을 펼쳤습니다. 그때 동산동 밥할머니가 이 여성부대의 의병장이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각기 다른 네 부류의 병력이 나라를 구하고자 혼신을 다함으로써 행주대첩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자! 그럼 이제 다음 장소인 권율 장군의 사당 충장사로 이동하겠습니다 (출처 : 행주산성 홈페이지) 
 
 
 


행주산성이라 산인데 은근 가파르고 길더라구요
짐을 최소화하고 편한 운동화 필수입니다. 아이가 힘들어 할 수 있으니, 살살 달래면서 올라가야합니다. 
 
한 30분 정도 올라가니 정상이 보였는데요 기념비와 대첩기념관이 정상입니다. 
 
이제 대첩기념관으로 갑니다. 저기 왼쪽에 예사롭지 않은 큰 바위가 보이지요? 가까이 가 보겠습니다. 이 바위를 가리켜 장군바위라고 합니다. 바위에 무슨 이름이 있냐구요? 여기에는 전설이 하나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행주대첩 당시 권율 장군은 정상에서, 그리고 조경장군은 이 근처에서 군사를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3만의 왜군이 몰려오자 군사들이 당황하여 도망가는 위급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권율 장군은 칼을 빼들고 도망가는 군사의 목을 치며 독려하셨고 이곳을 지키던 9척 장신의 조경장군은 싸움을 피하려는 군사들을 설득합니다. 지금 우리는 싸움에서 이길 방법이 없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기적이 있는 법, 내가 만약 이 바위를 손가락 하나로 들어 올린다면 하늘이 우리를 도와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함께 싸워보지 않겠느냐? 라고 물으니 군사들이 바위를 보아하니 결코 들어올릴 수 없는 크기였습니다. 군사들은 이에 응하자 조경장군은 바위를 번쩍 들더니 마침내 엄지손가락 하나로 들어 올렸습니다. 이때 와~ 하는 함성과 함께 군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져 대첩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합니다. 믿을 수 없다고요? 자, 그럼 여기 푹 파인 엄지손가락 자국을 보세요. 이를 증명하는 증표랍니다. 이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는 모든 일에 있어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어떤 어려운 결정이나 소원이 있다면 여기 엄지손가락 자국에 내 엄지손가락을 맞춰서 힘을 얻어가세요. (출처 : 행주산성 홈페이지) 
 
 
 
행주산성 축제에서 다양한 행사가 이뤄지고 있는데요 시간이 일러서 참석을 못하게 되어 아쉬웠어요 
그래도 역사에 관심이 많은 아이는 신기해합니다. 성벽이 없어서 좀 아쉬워했지만요
 
신기전이나 기타 무기들을 주로 관심있게 보고 음성설명도 들으면서 생생한 역사 현장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체험하는 프로그램들이 먼저 오픈한것들이 있어서 몇가지 보고 왔습니다. 
조상들의 MBTI도 보고 도장찍기 케리커처 무기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들을 해보고 왔네요 


 
이제 슬슬 배가 고파서 아이가 좋아하는 돈까스와 국수집을 찾아보았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치즈돈까스와 국수가 있어서 급하게 찾았는데요 삼이국수라고 평도 괜찮아서 이른 저녁을 먹었습니다. 
주차장도 크고 들어가면 바로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면 됩니다. 
 
곱배기로 국수를 시킬수 있어서 남편은 좋아하더라구요
반찬이나 물은 셀프로 가져오고 주문이 나올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돈까스가 굉장히 커보였는데요 저희는 치즈돈까스였는데 치즈가 사진과 똑같이 가득있었어요
국수의 멸치 국물도 시원하고 비빔국수도 새콤달콤해서 돈까스랑 같이 먹기 좋았습니다. 
 
역시나 우리아이뿐만 아니라 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맛있게 저녁까지 먹고 차가 막힐거 같아 서둘러 집으로 왔습니다. 
 
가족모두 만족한 하루가 또 이렇게 흘러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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